굴드의 레이저 특허
“몰랐소, 그리고 몰랐기 때문에 기쁘오.”
“방사의 유도방출에 의한 광 증폭(LASER，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란 뜻을 가진 용어인 ‘레이저’ 개넘을 정립한 굴드(Gordon Gould, 1920~2005)가 특허를 받기 위해 특허정과 벌였던 이른바 3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냐는 질문을 받고 한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시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몰랐기에 30년 동안 싸울 수 있었고, 그 30년 동안 커진 시장에서 거두어들이는 기술 수입료(royalty)가 엄청나기에 기뻐했을 굴드에게는 늘 불운과 행운이 함께 따랐다.
굴드는 젊은 시절에 활동했던 공산주의자 정치협회(communist political association) 경력 때문에 원자폭탄 개발 과제였던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해고되는가 하면(1944.3~ 1945.1), 민간기업인 TRG(Technical Research Group)에서도 정부과제를 수행하다가 보안허가 문제로 제외되기도 했다. 게다가 1957년에 가장 먼저 레이저 개념을 정리하여 연구노트에 기록하고도, 실제 작동하는 레이저 장치를 만들어야 특허로 출원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2년이나 지난 1959년에 출원하는 실수를 했다. 이때까지 레이저 발진은 성공하지 못했으니, 결국 굴드도 작동하는 레이저를 출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굴드가 특허출원을 늦춘 이유이기도 했던 레이저 장치의 성공은 굴드의 출원 이후인 1960년에야 이루어진다. 노벨상을 수상한 타운스나 숄로도 아니었고, 특허전쟁의 당사자인 굴드도 아닌, 휴즈 항공기회사(Hughes Aircraft Company)의 연구원이었던 메이먼(Theodore Harold Maiman, 1927~2007)이 주인공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유도방출 이론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가 제시한 원자 모형에서 원자에 속박된 전자는 특정한 에너지 상태에만 존재할 수 있으며, 높은 에너지 상태(들뜬상태 또는 여기상태)에 있다가 낮은 에너지 상태(바닥상태 또는 기저상태)로 내려가면 그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가진 파동을 방출하게 된다. 이러한 방출을 자연방출 또는 자발방츌(spontaneous emission)이라고 하며, 불규칙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원자가 파동을 흘수하면 반드시 그에 대응되는 파동의 방출과정을 수반해야 하며, 흡수된 파동이 원자의 전자를 유도해 같은 종류의 파동을 방출하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방출이 유도방출(induced emission) 또는 자극방출(stimulated emission)이다. 결국 불규칙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자발방출을 방출파와 동일한 파장을 가지는 파동을 이용한 자극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유도방출은 동일한 파장의 파동이 동시에 방출되므로 파동의 마디(node)와 배(anti-node)의 위치가 동일하면 진폭이 커지는 증폭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파동의 증폭은 1953년 말에야 타운스에 의해 구현될 수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조건에서 원자는 안정된 상태에 있으므로 전자의 대부분이 낮은 에너지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외부 자극으로 파동이 입사할 경우에 흡수는 되지만 원래부터 높은 에너지 상태에 전자가 많이 있지 않아서 유도방출된 파동이 흡수파동보다 크지 않아 정작 증폭을 관찰할 수 없는 것이다. 파동의 증폭은 유도방출된 파동이 흡수 파동보다 커야만 일어날 수 있으며, 원자의 높은 상태에 위치하는 전자가 낮은 상태의 원자보다 많아야만 가능해서이다. 이처럼 높은 에너지 상태에 전자가 많은 불안정한 에너지 상태를 반전밀도 상태라고 한다.
타운스는 암모니아에 자기장을 가해 마이크로파 대역을 파동을 방출하는 에너지 간격에서 반전밀도 상태를 만들어서, 유도방출이 증폭에 사용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또한 타운스와 독립적으로 메이저를 연구한 모스크바의 바소프(Nikolay Gennadiyevich Basov, 1922~2001)와 프로호로프(Alexander Michael Prochoroff, 1916~2002)는 ‘메이저 레이저 원리를 이용한 진동기와 증폭기의 기초를 구축한 양자 전자론 분야의 업적을 인정받아 1964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바소프와 프로호로프는 메이저 이론에 대한 논문을 1952년에 발표하였고, 타운스는 1953년에 암모니아 마이크로파 증폭을 관측하고 1954년이 되어서야 학회에 보고하였다. 바소프와 프로호로프의 이론과 타운스의 실험이 함께 인정받은 것이었으나, 실험 전에 이론연구도 미리 진행해 왔던 타운스는 이후부터 특허 출원과 논문발표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광학 메이저 또는 레이저
콜롬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굴드는 그 전부터 알려져 있던 기술인, 원자 또는 분자의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전자를 높은 에너지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해 빛을 사용하는, 광펌핑(optical pumping)을 메이저의 밀도반전에 사용할 것을 1956년에 제안하였다. 굴드는 당시 콜롬비아대학 교수였던 타운스에게도 광펌핑을 메이저에 적용하는 문제를 상의했으며, 계속해서 광펌핑을 이용한 광증폭연구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1957년에 굴드는 광펌핑과 함께 두 개의 고반사 거울 사이에 공진층(cavity)을 두는 패브리-페로 간섭계(Fabry - p‧rot interferometer) 형태의 광 공진기(optical resonator)를 적용한 광증폭기 개념을 완성하고 이를 연구노트에 기록하면서 레이저 (LASER, La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라는 말을 만들었다.
굴드 연구는 두 개의 거울 사이에 헬륨-네온 기체를 넣고 빛이 거울에 반사하면서 기체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가도록 해서 광펌핑을 한 뒤 유도방출이 한꺼번에 일어나도록 하는 공명현상을 개념화하였다. 그렇게 되면 유도방출의 위상과 주파수가 동일하므로 결맞는(coherent) 광선을 방출하게 된다. 아쉽게도 굴드는 특허를 출원하지 않은 채 레이저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발명의 개념이 정립된 상태라면 그 상태에서 특허출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메이저(MASER) 연구가 그랬듯이 새로운 기술의 연구에는 항상 경쟁자가 있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메이저를 개발한 타운스도 광학 메이저를 연구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굴드가 광펌핑의 적용가능성을 상의하기까지 했다. 굴드가 발명을 완성하고 출원을 하지 않고 있던 1958년에 타운스는 단독으로 PRODUCTION OF ELECTROMAGNETIC ENERGY(US Patent 2,879,439)를 특허출원했고, 숄로와 공동발명으로 벨연구소(Bell Telephone Laboratories)에서 MASERS AND MASER COMMUNICATIONS(US Patent 2,929,922)를 특허출원하였다. 이 2개의 특허출원은 1960년에 모두 등록받았다.
굴드는 1959년 4월 6일에 2개의 특허를 출원하지만 이미 레이저의 개넘은 타운스와 슐로가 먼저 출원해서 특허등록이 거절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굴드에게도 희망은 있었으니 당시 미국 특허제도는 진정한 발명자가 누구인가를 가리는 기준으로 선발명주의를 취하고 있었다. 특허청에 먼저 출원하는 자에게 특허권을 주는 선출원주의와 달리， 선발명주의는 연구노트 등으로 발명일을 밝힐 수만 있으면 먼저 발명한 사람에게 특허받을 권리를 인정한다.
굴드에게 한 가지 더 좋았던 일은 숄로가 제안했던 이름인 광학 메이저(optical maser)가 아닌, 레이저(laser)가 1959년에 빛의 증폭장치 이름으로 채택되었고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레이저 개발 이후
타운스, 숄로 그리고 굴드가 레이저 개발을 놀고 경쟁하는 사이에 최초 발명자의 영광은 메이먼에게 돌아간다. 다른 연구자들이 기체레이저에 집중하는 동안 고체인 루비를 펼스광으로 광펌핑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성공요인이었다. 1960년 5월 16일은 인류 최초의 레이저가 탄생한 날이었다. 메이먼은 이를 특허로 출원하여 등록받았고(미국특허 3,353,115), 고출력 루비 레이저를 제작하는 회사(Korad Corporation)도 설립하였다.
타운스는 노벨상을 받고 최초발명자의 영예는 메이먼이 가져간 상황에서 굴드는 특허등록을 위한 특허정 및 법원과의 소송전을 계속해 나갔다. 그런데, 연구노트의 기록이 남보다 앞선 발명으로 인정되자 이번에는 그 내용을 완성된 발명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다투어졌다. 특허전쟁으로 불린 이 다툼은 굴드가 1967년에 TRG사를 떠나 뉴욕대학의 교수로 된 뒤에도 이어졌다. 그러다가 1970년에 TRG사를 인수한 CDC(control Data Corporations)로부터 굴드는 자신의 특허를 되사들이고, 자신이 출원했던 특허명세서에 기록된 핵심부품 기술에 관한 특허를 받는 전략을 구사한다.
굴드가 새로운 전략을 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특허제도가 심사 중에 등록 전이라면 원래 명세서에 기재된 청구향을 분할하여 새로 출원하는 분할출원뿐 아니라， 원래 기재된 범위에서 새로운 청구항을 출원하는 계속출원과 함께 새로운 기술 내용까지 새로 출원하는 일부계속출원을 허용하기 때문이었다. 이 전략은 성공적이어서 굴드는 1959년에 출원했던 두 개의 특허를 근거로 4개의 새로운 특허를 출원했고 모두 등록받았다. <그림 3>의 특허는 1974년에 출원하여 1977년에 미국특허 4,053,845번으로 등록받았고, 1977년에는 METHOD OF ENGINEERING MATERIAL을 출원하여 1979년에 미국특허 4,161,436번으로 등록받았다. 이밖에 1977년과 1978년에 하나씩 더 출원하여 각각 1987 년(미국특허 4,704,201번)과 1988년(미국 특허 4,746,201번)에 등록받는다.
굴드가 처음 특허를 출원한 1959년부터 마지막 특허를 등록받은 1988년까지 30년이 걸린 셈인데, 이 사이에 레이저산업의 규모는 엄청나게 성장하였다. 게다가 지금은 특허권이 특허출원일부터 20년까지만 인정되므로 30년 뒤에 특허를 받았으면 아무 소용도 없겠지만 당시에는 특허등록일부터 17년까지 특허권이 인정되었다. 특허별로 1977년, 1979년. 1987년 그리고 1988년부터 각각 17년씩 특허료를 받게 된 굴드는 돈방석에 앉았고, 소송대리인은 그 중 80%를 가져갔다. 굴드는 1979년에 특허권을 관리하는 회사인 Patlex도 설립하였고, 30년 전쟁 후 매년 1.200백만 달러 상당의 특허수수료를 벌어들였다.
아인슈타인의 가설에서 시작한 유도방출은 마이크로파의 증폭을 가능하게 한 메이저 (MASER)의 개발과 빛의 증폭을 이루어낸 레이저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연구실과 산업현장의 정밀가공과 정밀계측분야 뿐 아니라 안과수술을 포함한 여러 수술실에도 레이저 장치는 필수품이 되었으며, CD나 DVD 플레이어 또는 바코드 시스템처럼 주변 어디에서나 우리를 위해 깜빡이고 있는 레이저 불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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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3 13:46
조회 : 4,958
[과학과기술]COLUMN_기초과학연구에서 실용화까지_레이저_Feb.2017.pdf (4.7M) [17] DATE : 2017-03-03 13:47:17
http://ebook.kofst.or.kr/book/201702/#page=93 [1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