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토닉과 퀴닌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겼고, 영화 내부자들로 유명해진 모히토(Mojito)는 럼(Rum) 기반 칵테일(Cocktail)이다. 이처럼 칵테일은 독한 술에 맛과 향을 더해 술맛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진 토닉(Gin and tonic)은 토닉 워터(tonic water)에 탄 퀴닌(quinine)의 쓴 맛을 입에 맞도록 하려고 증류주인 진을 섞은 드문 경우이다.
말라리아의 예방과 치료제로 전해오던 킨코나(Cinchona) 나무의 껍질에서 펠레티어 (Pierre Joseph Pelletier, 1788~1842)와 카방투(Joseph Bienaimé Caventou, 1795~1877)가 퀴닌을 추출해 낸 때가 1820년이었다. 이후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 장교가 진 토닉을 개발하자, 해열치료용 약제 수요에다 말라리아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칵테일용 수요까지 더해 퀴닌의 공급은 늘 부족했다.
영국의 퍼킨(William Henry Perkin, 1838~1907)이 1856년에 퀴닌 합성을 시도한 것은 이런 저간의 상황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퍼킨이 콜타르(coal tar) 에서 뽑아낸 무색 방향유(aromatic oil)인 아닐린(aniline)을 중크롬산칼륨(potassium dichromate)으로 산화시키던 중에 톨루이딘(toluidine) 불순물이 아닐린과 반응하여 검은색 고체가 플라스크에 침전되었다. 이 침전물을 알코올로 씻어내다가 연한 자줏빛의 염료인 모브(mauve)를 얻었고, 이는 최초의 유기합성 염료가 되었다.
불과 18세의 나이에 퍼킨은 “비단, 면, 양모 또는 기타 재료를 라일락이나 자주색으로 염색하기 위한 새로운 색소(a new colouring matter for dyeing with a lilac or purple colour stuffs of silk, cotton, wool, or other materials)" 라는 이름으로 1856년 8월 26일에 특허를 출원한다. 퍼킨은 특허출원에 그치지 않고 사업에도 나서 염료 공장을 세워 크게 성공한 뒤, 은퇴하여 화학합성 연구를 계속하기도 했다.
콜타르에서 뽑아낸 염료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인디고(indigo)였다. 독일의 아돌프 폰 바이어(Johann Friedrich Wilhelm Adolf von Baeyer, 1835~1917)는 천연식물 쪽의 푸른빛을 합성해내서, 190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아돌프 폰 바이어가 1874년에 당시만 해도 독일에 속했던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지도했던 학생인 오트마 자이들러(Othmar Zeidler, 1850~1911)도 염료를 합성해낸다.
황산의 존재하에 클로랄 수화물을 클로로벤젠과 반응시키면, 이염화 이페닐이 삼염화에테인과 결합한 결과물로 나타났던 것이다. DDT라는 약칭으로 더 유명한 이 합성물질은, 그러나 자이들러가 합성하고 논문으로 발표만 했을 뿐 더 이상의 언급 없이 한 동안 잊혀진 상태로 있었다.
전염병 연구, 말라리아와 티푸스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을 합성하려는 시도와 함께 말라리아의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도 계속되었다. 프랑스 육군 소속 외과의사였던 라베랑(Charles-Louis Alphense Laveran, 1845~1922)은 말라리아 환자의 적혈구에서 발견되는 검은 입자인 멜라닌을 연구해 말라리아 기생충을 발견했다. 이 발견과 관련된 후속 연구로 라베랑은 “질병유발 원생동물의 습성 발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07 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된다.
그렇지만 라베랑의 발견은 말라리아 기생충이 어떤 경로로 인간에게 전파되는지를 밝히지는 못했다. 라틴어 malus(나쁜)와 aria(공기)의 합성어인 말라리아의 어원처럼 열대지방 습지의 나쁜 공기에서 오는 풍토병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모기의 위벽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을 발견해내고 인간에게 침투하는 과정은 영국의 세균학자 로스(Ronald Ross, 1857~1932)가 밝혀냈다.
모기의 위벽에서 포자형성의 유성생식과 개체수를 늘리는 무성생식을 통해 생겨난 말라리아 원충은 모기의 칩을 통해 사람에게 옮겨 가는 것이다. 사람의 간세포와 적혈구에서는 다시 무성생식을 하면서 적혈구를 파괴한다. 로스도 1902년에 “말라리아의 생체침투법 발견으로 말라리아 치료법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이유에서 밝혔듯이 로스도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근본적인 방책은 세우지 못했다.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으려면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혹시 모기에 물리면 퀴닌을 처방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백신제조와 유사한 방법으로 보이는 말라리아 열성 감염균 주입은 마비성 치매의 치료에 사용되기도 했다. 매독치료를 위한 항생제가 없던 1910년대에 신경매독에 의한 마비성 치매 치료에 말라리아 기생충을 사용한 오스트리아 신경병리학자 야우레크(Julius Wagner-Jauregg, 1857~1940)는 1927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데, 수상이유가 “마비성 치매의 치료에서 말라리아 접종법의 가치에 대한 연구”였다. 실제 말라리아 치료법으로 치매가 치료되는 비율은 30% 정도였다고 하며,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정신병 치료를 위해 포르투갈의 에가스 모니스(포르투갈어: António Caetano de Abreu Freire Egas Moniz, 1874~ 1955)가 연구한 전두엽 절제술(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과 함께 많은 얘깃거리를 남긴 노벨상 수상사례이기도 하다.
열대지방이나 아열대지방에서 주로 발생하는 말라리아와 달리 티푸스는 전쟁이나 기아 상황에서 생겨나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 17세기 초에 지금의 독일지역인 신성로마제국에서 벌어진 30년 전쟁,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전쟁,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은 전투로 인한 사망자보다 티푸스 사망자가 더 많았던 기록을 남길 만큼 티푸스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1903년부터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 소장을 지낸 프랑스의 세균학자 샤를 니콜(Charles-Jules-Henri Nicolle, 1866~1936)은 티푸스 환자들을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먼 더 이상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환자의 몸이나 옷에 살고 있는 몸니(louse)가 전염 요인임을 생각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09년에 티푸스에 감염된 원숭이를 물었던 몸니가 건강한 동물에 감염을 일으키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여기에 더해 회복기에 접어든 티푸스 환자의 혈청으로 예방접종을 하는 연구까지 수행하여 티푸스 퇴치에 큰 공헌을 했다.
1928년의 노벨 생리의학상은 ‘티푸스 연구’로 샤를 니콜에게 수여됐지만, 몸니를 제거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니콜의 발견 이후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러시아에서만 3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비극은 계속되었다. 말라리아는 여전히 매년 3억 명이 걸리고 그 중 최소한 300만 명이 사망하는 전염병으로 남아 있었다. 결국 말라리아도 그렇고 티푸스도 그렇고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모기와 몸니를 제거하는 것이 과제였다.
DDT의 용도발명 특허
스위스의 가이기(J. R. Geigy AG)사에서 식물 보호용 살충제를 연구하고 있던 파울 뭘러(Paul Hermann Müller, 1899~1965)는 DDT가 파리, 콜로라도 감자잎벌레 모기뿐 아니라 이나 벼룩에도 살충효과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파울 뭘러는 1925년부터 10여 년간 염료연구를 하였고, 그 뒤로도 4년 동안 349번의 실패를 반복한 끝에 DDT의 성능을 발견했으니 그 때가 1939년 9월이었다. 퍼킨은 말라리아 치료제를 합성하려다 염료를 개발했는데, 뭘러는 염료로 합성된 DDT에서 말라리아 숙주의 살충제를 발견한 것이다.
뭘러가 한 일은 자이들러가 발명한 DDT의 용도를 새롭게 발견한 것이었다. 가이기사는 뭘러가 발견한 살충제용도를 특허로 출원하여 스위스에서 1940년에 등록받았고 미국에서도 ‘US 2329074, Devitalizing composition of matter’로 1943년에 등록받았다. 아래 <그림 3>의 청구항에서 볼 수 있듯이 특허에서는 물질을 청구하지 않고 살충제를 청구하여 용도발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DDT라는 약칭은 가이기사가 5%와 3% 희석 살충제를 대량 공급한 뒤에 영국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가이기사는 그 후 여러 회사를 합병하여 지금은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노바티스(Novatis)사로 되었다.
사실상 ‘발견’으로 볼 수 있는 용도발명이 특허를 받기 위해서는 그 발견된 특정 속성이 단순히 감각으로 인식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특정 속성의 발견과 용도의 이용에 일정한 창작적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뭘러는 수 백 번의 실험을 거쳐 살충제의 특성을 연구하였고 포유류와 달리 절지동물에만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는 물질을 합성하거나 찾아 나섰고 그 결과 오랜 기간 잊혀졌던 DDT를 찾아내 발견과 용도의 이용에 창작적 인과관계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
이처럼 용도발명으로 특허를 얻었기에 1948년 노벨상위원회는 “DDT의 효과, 특히 절지동물에 대한 접촉성 살충 효과 발견” 에 대한 공로로 파울 뭘러에게 생리의학상을 수여한 것이다. 용도의 발견으로 특허를 받아 기업이 성장하고 과학자는 노벨상까지 받은 사례이다.
DDT, 그 후
DDT의 살충효과는 획기적이어서 말라리아와 2차 대전 종전시기 전후에 발병한 티푸스 퇴치로 인류에게 큰 축복처럼 여겨졌다. 심지어 1940년대 미국에서는 미키 슬림(Mickey Slim)이라는 이름의 DDT와 진을 혼합한 칵테일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진 토닉에 이어 말라리아 예방 역할을 하는 칵테일이었던 셈이다. DDT는 가격이 저렴했을 뿐 아니라 제조방법도 간단했으며, 무엇보다 한번 뿌리면 그 표면은 몇 달 동안이나 살충 효과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바로 지속성으로 문제가 발생하였으니 잔류독성으로 인해 생태계 파괴가 문제된 것이다. 급기야 1962년에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이 환경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명저 ‘침묵의 봄’ 에서 DDT가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되는 끔찍한 결과를 경고하게 되었다.
DDT의 가장 큰 문제는 먹이사슬을 통해 나타난다. DDT가 들판에 뿌려지면 먼저 곤충이 죽게 되고, 이 곤충을 먹은 새들의 몸에 DDT는 축적된다. 물에도 말라리아 유충을 죽이기 위해 DDT를 뿌렸으며 이로 인해 송어 등의 물고기가 죽어 나갔다. DDT가 묻은 물을 먹은 가축의 몸에도 DDT는 흡수되어, 사람이 먹는 달걀이나 소의 우유 또는 고기에도 DDT가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먹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체를 통해 혹은 모유수유를 통해 자식에게까지 축적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국에서는 1972년부터 사용이 중지되었고, 한국에서도 1979년부터 금지된 살충제가 되었다.
한편 퍼킨이 시도했던 퀴닌의 합성연구도 꾸준히 지속되어 미국의 로버트 우드워드(Robert Burns Woodward, 1917~1979)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퀴닌 합성에 성공한다. 이 공로를 포함한 ‘유기합성 기술의 뛰어난 공로’로 우드워드는 1965년에 노벨화학상을 받게 되니 퍼킨의 노력 이후 100여 년 만에 이룬 개가이다. 또한, 미국의 히칭스(George Herbert Hitchings, 1905~1998)는 1950년에 항말라리아 약물인 피리메타딘을 개발하여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발명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서 고도한 것이라고 우리 특허법은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발명을 보호, 장려하고 그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국가가 특허제도를 두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처럼 발명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어야 하고, 새로움에 더해 유용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었지만 별 쓰임새를 찾지 못한 채로 남아있던 것의 유용성을 새롭게 찾아낸다면 이는 발명일까? 이는 결국 원래부터 자연계에 존재하던 것을 발견한 것과 차이가 없는 것 아닐까? 새로운 물질의 발명 못지않게 기존의 물질에 대한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용도발명은 주로 의약을 중심으로 활발히 특허출원이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의 예로는 협심증 치료제용으로 연구하던 실데나필(Sildenafil)을 발기부전 치료제로 개발한 비아그라가 있다.
새로운 속성의 발견과 그 용도의 이용에 창작적 인과관계가 성립되었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 백 번의 실험을 반복할 수 있는 끈기와 인내가 있어야 한다. 다만, 그러한 끈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발명이 가져오는 효과에 부수되는 부작용은 없는지도 함께 살필 수 있는 지혜일 것이다.
과학과 기술 2017년 4월호_ COLUMN_ 기초과학연구에서 실용화까지_ 글: 문환구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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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7 11:07
조회 : 5,474
[과학과기술]COLUMN_기초과학연구에서 실용화까지_염료와 살충제_Apr.2017.pdf (3.0M) [8] DATE : 2017-04-07 11:07:37
http://ebook.kofst.or.kr/book/201704/#page=92 [17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