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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1-05 17:28

마라톤의 과학

글쓴이 : 문환구

마라톤은 비록 여러 가지 전설이 뒤덮이기는 했지만 피디피데스라는 용감한 병사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운동경기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490년, 세계적인 대국이었던 페르시아의 대군이 아테네로 쳐들어오자 아테네는 경쟁과 협조관계에 있던 스파르타에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당시 군대에서 중요한 역할이었던 전령의 지위에 있던 아테네의 피디피데스는 페르시아 군과 마주하고 있던 마라톤 평원에서부터 200km를 넘게 달려 스파르타에 군사지원요청을 하러 갔다. 그러나 축제 중이었던 스파르타는 보름달이 뜰 때까지 지원군을 보내 줄 수 없다는 답변만을 했고 이 실망스런 소식을 안고 피디피데스는 전쟁터인 마라톤광장까지 다시 달려와 페르시아군과 싸워야 했다.

세계 전사에 남을 만큼 작은 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물리친 아테네군은 승리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이번에도 피디피데스를 선택했다. 스파르타까지의 왕복에다 전투에 참여해 지칠 대로 지쳤던 피디피데스는 자신의 도시국가인 아테네까지 한 달음에 달려가 승리를 전하고 마침내 그 자리에서 쓰려져 죽었다는 것이 전설의 전부이다.

마라톤광장에서 아테네까지의 거리인 40km를 달리는 경기였던 마라톤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의 시작과 함께 부활하였다. 제1회 올림픽인 아테네대회에서는 그리스의 목동이었던 스피리돈이 우승을 해 피디피데스의 영광을 재현했지만 그 때까지도 이 무지막지한 경기를 아는 외국인은 드물었다.

이 경기를 목격하게 된 미국선수단의 존 그라함은 자신의 고향인 보스톤에 돌아가 다음 해 보스톤마라톤대회를 개최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보스톤마라톤대회에서 한국인은 서윤복(1947년), 함기용(1950)에 이어 이봉주(2001)가 우승을 했다.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마라톤선수들의 출발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왕실 때문에 출발선을 윈저궁 앞으로 바꾸는 바람에 2.195km가 더해져서 전체거리 42.195km가 되어버린 마라톤은 그때까지도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경기였다. 달리다가 지쳐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경기였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조건이 뛰어난 사람이 선수로 선발되어 또 엄청난 훈련을 거친 뒤에야 참가가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우리나라만 해도 거의 매주 마라톤 경기가 열리고 대회가 열릴 때마다 수 만 명의 일반인이 참가하고는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우선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 한 원인이다. 여기에 영양상태의 개선과 과학적인 운동생리학의 발달은 마라톤을 충분히 안전하게 참가할 수 있는 운동으로 만들었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장거리달리기를 하면 근육세포가 파괴되고 관절뿐 아니라 뼈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의 근육은 사용하면 발달하기 때문에 보통 1년 이상 꾸준히 달리기를 했을 때 장거리 달리기를 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해진다. 여기에다 달리기를 계속하면 뼈도 강해지기 때문에 2~3년 동안 계속해서 훈련을 하면 10km 이상 장거리를 달려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마라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km, 30km 이렇게 더 먼 거리에 대한 적응훈련을 조금씩 거리를 늘리며 반복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42.195km가 운동장처럼 평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훈련도 해야 하며, 대부분의 대회가 5시간 정도를 제한시간으로 하기 때문에 속도 훈련도 해야 한다.

체력훈련으로 몸이 만들어졌어도 경기에 참가하려면 전 구간을 달릴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저장하는 식이요법을 해야 한다. 운동을 할 때 우리 몸은 근육과 간에 저장된 동물성 탄수화물인 글리코겐을 사용한다. 식물은 탄수화물을 열매나(사과) 뿌리(감자) 또는 줄기(고구마)로 저장하지만 동물은 글리코겐을 일정량 이상 저장할 수 없다. 그래서 성장과 운동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섭취되는 영양분은 동물의 몸에 지방으로 바뀌어 저장된다.

우리 몸이 운동을 시작할 때는 근육과 간에 저장되어 있는 글리코겐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20분 정도가 지나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함께 사용하기 시작한다. 운동으로 살을 빼려면 30분 이상 지속해야 한다는 것은 지방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글리코겐은 35km 정도를 달리면 고갈되므로 시합 전에 글리코겐을 최대한 근육에 쌓아 놓아야 한다. 지방에서 얻는 에너지만으로는 힘을 제대로 내기 어려워서이다. 그래서 마라톤 시합 1주일 전 선수들은 3일 정도 살코기, 계란 흰자 등 단백질만 섭취하면서 가벼운 운동을 해 몸 속 글리코겐을 거의 다 써버린다. 글리코겐부족으로 눈앞이 노랗게 될 때 이제는 밥, 국수, 고구마, 꿀 등 탄수화물만 섭취한다. 방금 전 글리코겐부족을 경험했던 우리 몸은 그런 경우에 대비하려고 최대한의 글리코겐을 근육과 간에 저장한다.

마라톤경기에서는 선수들에게 5km마다 음식물을 공급한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글리코겐을 쌓은 상태에서 출발선에 서야 마라톤 벽이라고 불리는 35km지점의 에너지고갈을 겪지 않고 결승점까지 힘차게 뛰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세웠던 당시 올림픽 최고기록이었던 2시간29분19초보다 빨리 결승선을 통과하는 일반인도 드물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