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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11 17:13

물리학과 첨단기술 2013년 5월호 : 직접회로 개발 - 특허와 노벨 물리학상

글쓴이 : 관리자

5 월 article.pdf (6.3M) [11] DATE : 2013-06-11 17:13:41

http://www.kps.or.kr/storage/webzine_uploadfiles/1993_article.pdf [1623]

이 글은 물리학과 첨단기술 5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들어가는 글

“기술이나 실용적인 성과에는 노벨상을 주지 않을 거요”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 발명에 대한 기여로’ 2000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잭 킬비(Jack St. Clair Kilby, 1923–2005)와 함께 집적회로의 공동발명자로 인정받는 인텔의 공동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Robert Norton Noyce, 1927–1990)가 생전에 노벨상 수상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대답이다[1].

실제로 집적회로의 발명자로 인정받는 사람이 잭 킬비 단독 또는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 2인으로 좁혀졌다는 사실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던 역사학자 중 한명인 아준 삭세나(Arjun Saxena)는 잭 킬비의 공헌분야가 기초과학 이라기보다는 순수한 기술이기 때문에 그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지를 흐리는 것[2]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아준 삭세나의 비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대표적인 논문으로 그 업적을 드러낼 수 있는데 잭 킬비의 경우는 그 업적이 인정된 것이 논문이 아닌 특허였기 때문이다. 또한 잭 킬비와 집적회로 특허를 두고 법적 분쟁(사실은 특허권을 보유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와 페어차일드 반도체 사이의 분쟁)을 벌였던 로버트 노이스도 자신의 연구결과물을 주로 특허로 남겼고 이들은 함께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니 토마스 에디슨이나 라이트형제처럼 과학자라기보다는 기술자로 인식되기도 했다.
과연 잭 킬비는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인 노벨상을 받을 만큼의 학문적 기여를 했을까? 전화기 특허를 둘러싼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과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의 다툼을 놓고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는 광고문구도 있었는데, 어떻게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의 특허는 둘 다 등록될 수 있었을까?

직접회로 개발과 특허

1943년에서 1946년에 걸쳐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제작한 진공관 컴퓨터 에니악(ENIAC, 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에는 진공관 18,000개와 릴레이 1,500개가 사용되어 무게는 30톤이나 되었고, 소비전력도 150kW나 되었다. 이처럼 많은 수의 전자부품을 연결하다보니, 부품의 고장과 오작동으로 인한 손실이 계산기 장치로부터 기대되는 혜택보다 더 커지게 되었고는 이러한 복잡성을 ‘수의 횡포’(the tyranny of numbers)[3]라고 부르기도 했다. 불렀다.
벨연구소의 존 바딘(John Bardeen, 1908–1991), 월터 하우저 브래튼(Walter Houser Brattain, 1902-1987), 윌리엄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1910-1989)가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것이 1947년이었지만 이들이 ‘P·N p-n 접합의 전자론적 연구 등 전자 연구에 이바지한 공로’로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때까지도 작은 기판위에 전기회로의 구성요소를 모으고 이를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림1. 잭 킬비가 제작한 집적회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Texas Instruments)의 연구원이었던 잭 킬비는 1958년 7월에 모든 소자를 반도체로 구현하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그해 8월에 게르마늄(germanium)칩에 p-n접합을 기반으로 한 집적회로(그림 1)를 구현한 뒤 1959년 2월 6일에 “Miniaturized electronic circuits”라는 명칭으로 특허출원하였고 1964년 6월 23일에 미국특허 3,138,743호(그림 2)로 등록[4]받았다.

그림2. 잭 킬비의 특허명세서 도면

1959년 1월에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의 로버트 노이스는 실리콘을 이용한 집적회로를 구상해 실리콘 기판에 소자를 만든 뒤 그 위에 평면처리공정으로 산화막을 입히고, 다시 산화막 위에 금속층을 도포한 다음 사진공정과 식각공정으로 금속배선을 완성하였다. 로버트 노이스는 1959년 7월 30일에 ‘Semiconductor device-and lead structure’라는 발명의 명칭으로 이 기술을 특허출원하였고 1961년 4월 25일에 미국특허 2,981,877호(그림 3)로 등록[5]받았다.

그림2. 로버트 노이스의 특허명세서 도면

그러면 어떻게 먼저 출원한 잭 킬비보다 뒤에 출원한 로버트 노이스가 특허는 더 빨리 받았을까? 두 특허 모두 집적회로를 다룬 것인데 나중에 출원한 로버트 노이스의 특허는 거절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특허는 신규성(특허법 29조 1항)과 진보성(특허법 29조 2항)이 있는 발명에 허여된다. 즉, 새로운 발명에 대해서 인정되며, 그 새로움이 그 분야의 평균적인 수준의 기술자가 용이하게 발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잭 킬비는 반도체 소자의 집적에 대해서 특허출원하였으며 이는 출원 당시 그 분야의 평균적인 기술자들이 용이하게 발명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를 해결한 것이므로 특허받을 수 있었다. 다만, 그 구현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있어서 출원 후 5년이 지나서야 등록이 되었다.
로버트 노이스의 특허는 비교적 쟁점이 뚜렷했던 배선연결 문제를 해결한 것이어서 신규성과 진보성뿐 아니라 구현 가능성도 인정되어 출원일로부터 2년도 되기 전에 특허등록을 받았지만, 잭 킬비가 발명한 특허의 권리자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가 무효심판을 청구하면서 1969년까지 법정다툼을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선발명주의였던 미국 특허법에 따라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는 연구노트를 제시하게 되었고, 두 사람의 발명에 대한 착상이 각각 1958년 7월과 1959년 1월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잭 킬비의 발명은 출원일 뿐 아니라 발명일도 먼저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국은 특허제도에서 그동안 세계 표준이 되다시피 한 선출원주의를 취하지 않고 선발명주의를 취해 왔다. 이는 실질적인 발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는 적합하나, 발명의 공개를 통한 독점권의 보장이라는 특허법의 원리로 따져 보면 상대적으로 공개에 소극적인 태도를 용인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선발명자를 가리는 것이 통상 연구노트를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해도 이에 따른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특허제도의 국제적 통일화를 내걸고 2013년 3월 16일부터 미국도 선출원주의를 받아들였다.
당시의 심사기준인 선발명주의에 근거해 볼 때, 선발명인 잭 킬비의 특허 출원이 트랜지스터 소자의 집적 자체를 청구범위로 잡았던데 비해, 후발명인 로버트 노이스의 특허 출원은 개별 소자를 반도체 산화막으로 고립시키고(isolation) 금속층을 활용한 배선연결(interconnection)과 그를 위한 접촉부(contacts)가 청구범위여서 별개의 발명으로 인정되고 등록될 수 있었다.
잭 킬비의 특허는 실험을 게르마늄으로 했음에도 청구항에서 게르마늄 소자가 아니라 반도체 소자로 잡음으로써 권리범위를 넓게 했고, 등록된 이후 반도체를 사용하는 모든 집적회로에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로버트 노이스의 특허도 개별소자간 연결이라는 문제 해결로 실용성이 높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집적소자를 생산하려면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기술이었다.
잭 킬비의 특허는 일본에서도 곤욕을 치른다. 일본 기업들의 적극적인 특허등록 저지 활동인 정보제공으로 인한 심사 지연으로 1989년에야 등록되었다. 당시에는 특허등록을 위한 공고일로부터 15년간 특허권이 보장되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일본 반도체업계는 30년전 특허에 대해서 2001년까지 특허료를 지급해야 했다. 이는 보호주의로 악명높았던 일본 통상산업성(Japan 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 MITI)의 보이지 않는 견제로 인해 일본과의 합작사업에 곤란을 치르기도 했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에 1993년에만 5억 2천만 달러라는 기술실시료 수입을 안겨주었다. 이는 1980년대 후반의 기술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의 기술실시료 수입이 2억달러였던 점에 비추어 엄청난 수익이 일본 반도체업계로부터 왔음을 짐작하게 하는 금액이다[6].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와 페어차일드 반도체사는 법정 특허분쟁을 치열하게 벌이다가, 1966년에 서로의 특허권을 양사의 특허가 보완관계에 있음을 인정하고 상호 특허 실시권합의(cross-licence)에 도달한다.

기술자의 노벨상 수상

순수과학자보다는 기술자로 자신을 규정했던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는 이후에도 논문 발표보다는 특허출원을 통해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권리화하는데 집중했다. 잭 킬비는 열전사 인쇄기(U.S. Patent 3,496,333 Thermal Printer, filed October 1965, issued February 1970), 휴대용 계산기(U.S. Patent 3,819,921 Miniature Electronic Calculator, originally filed September 1967, issued June 1974)등의 특허를 등록받았으며, 로버트 노이스는 반도체 집적회로 특허를 계속 등록받았으며, 1968년에는 고든 무어(Gordon Earle Moore, 1929-)와 함께 인텔(intel)을 창업하여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로 성장시켰다.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는 과학자로보다는 기술자로 알려졌지만 바딘 등이 개발한 트랜지스터로부터 촉발된 극소전자혁명을 실질적으로 이끈 두 주역이다. 트랜지스터 개발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에 비추어 보면, 이들의 연구결과에 노벨상을 수여하는 것을 무리하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새로운 고체소자를 발견해내고 그에 대한 학문적 뒷받침도 충분히 설명했던 트랜지스터 개발 그룸과 차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벨상 위원회는 2009년도에 중국 출신 공학기술자로 광섬유기술의 실용화를 이루어낸 찰스 가오(Charles Kuen Kao, 1933-)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 줌으로써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서 기술자 혹은 실용과학자를 차별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로버트 노이스는 1990년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는데 기술자 혹은 발명가로 평가받는 사람의 노벨상 수상에 회의적이었던 그가 장수했더라면 잭 킬비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했을 가능성이 있었을까?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은 잭 킬비외에 조레스 알표로프르포(Zhores Ivanovich Alfyorov, 1939-)와 허버트 크뢰머(Herbert Kroemer, 1928-)가 ‘고속 광전자공학에서 사용되는 반도체 헤테로구조체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 받아 공동 수상했다. 공동수상자가 3명까지만 인정되는 노벨상 수상 원칙에 비추어 로버트 노이스가 잭 킬비와 함께 수상했다면 위 두 사람 중 한사람이 제외되어야 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1] Berlin, L. (2005). The Man Behind the Microchip: Robert Noyce and the Invention of Silicon Valle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 Saxena, A (2009). Invention of integrated circuits: untold important facts, International series on advances in solid state electronics and technology, World Scientific.
[3] Kaplan, F (2010). The Year Everything Changed, John Wiley & Sons.
[4] USPTO Patent Full-Text and Image Database (PatFT)
[5] USPTO Patent Full-Text and Image Database (PatFT)
[6] Andrews, Edmund (1994-09-01),"Texas Instruments Loses in Japanese Ruling",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