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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23 10:06

물리학과 첨단기술 2013년 11월호 : 주사 터널링 현미경 개발

글쓴이 : 관리자

2098_article.pdf (2.7M) [9] DATE : 2013-12-23 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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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관찰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현상이나 동태 따위를 주의하여 잘 살펴봄 ’이다. 사물의 현상이나 동태를 살펴보는 주체는 인간이고 그 수단은 인간의 눈이 인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이다. ‘관찰하는 대상의 세부를 상으로써 판별하는 능력’인 분해능은 관찰 수단인 가시광선 등의 파장에 반비례하므로, 가시광선 중에서는 붉은 빛보다 보라색 빛의 분해능이 우수하다.

드브로이(Louis de Brogile, 1892 ~ 1987)의 물질파 개념은 빛보다 파장이 짧은 전자가 빛보다 분해능이 큰 관찰 수단임을 확인하였고, 이는 곧 전자현미경의 개발로 이어졌다. 물질파로 본 전자의 파장은 운동량에 반비례하므로, 전자현미경의 분해능을 높이기 위해 (물질파로서) 파장이 짧은 전자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자에 가해주는 가속전압을 높이는 것이 방법이었다. 가속전압의 증가는 초고전압 투과전자현미경(Ultra-High Voltage 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을 낳았으나 0.1nm 정도의 분해능을 얻기 위해 교실 하나 크기의 장비를 설치해야 한다.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 ~ 1976)가 밝힌 물리적 관찰의 근본적 한계에 관한 이론인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관찰이 극미세계의 현상을 간섭하게 되는 것이 불가피하므로 관찰대상인 전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전자의 운동량을 크게 하는 관찰은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지게 된다.

또한, 가시광선을 이용한 관찰에서는 파장에 따라 색을 구별할 수 있으나, 전자현미경은 에너지 범위가 다른 전자의 흐름을 사용해도 단지 전자의 농도 대비(contrast) 차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전자를 관찰대상에 투과시키거나(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관찰대상에 조사하여 2차전자를 생성하도록 하여(Scanning Electron Microscope) 투과하거나 반사된 전자의 흐름을 측정하는 것이 결국 전자를 이용해 관찰대상을 ‘만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관찰 대상을 ‘만지는’ 수단이 관찰대상을 투과하거나 관찰대상으로부터 반사하지 않는 것으로 전환한 것은, 관찰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었다. 즉, 종전의 현미경이 눈으로 보는 것을 확장한 것이었다면, 양자역학에서 밝힌 터널링 현상을 측정하여 원자단위 표면구조를 조사하는 주사 터널링 현미경은 그야말로 손으로 만지는 것을 확장한 것이다.

게르트 비니히(Gerd Binnig, 1947~)와 하인리히 로러(Heinrich Rohrer, 1933~)는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IBM연구소에서 1979년 주사 터널링 현미경을 발명하고, 스위스 특허청에 1979년 9월 20일자로 발명의 명칭을 ‘Raster-tunnelmikroskop’로 하여 특허출원(CH1979-0008486)하였고, 파리조약을 통해 최초 출원일로부터 1년 이내인 1980년 9월 12일에 미국 특허청에 “Scanning Tunneling Microscope”를 발명의 명칭으로 하여 출원(US 186923)하였다.

그림1. 미국 특허출원186923, Scanning Tunneling Microscope(미국 특허청 발행 특허공보)

이 특허는 1982년 8월 10일 미국에서 등록받았으나, 이들의 논문은 1982년 4월이 되어서야 학술지에 게재[1]되었다. 이 논문을 포함하여 비니히와 로러가 발표한 여러 편의 학술 논문에는 기술적 도움을 준 크리스토프 거버(Christoph Gerber)와 에드문트 바이벨(Edmund Weibel)의 이름이 공저자로 등재되어 있다.

새로운 과학적 현상을 발견하거나 혁신적인 기술을 발명하였다면 특허와 논문을 함께 출원하고 발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데 특허는 신규성이 있어야 하므로 자신이 발표한 논문에 의해서도 거절될 수 있다. 게르트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의 사례를 참고하여 특허출원과 논문발표의 관계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논문발표와 신규성 상실

한국 특허법 29조는 특허요건을 규정한 조항으로 1항에서 신규성(미국 특허법 102조)을 규정하고 있고 2항에서 진보성(미국 특허법 103조)을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신규성은 출원 전 공개된 발명이 특허 받을 수 없다는 원칙으로, 특허권은 신규 기술을 공개한 대가로 독점권을 부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신규성은 그 상실이 문제되는데, 특허출원하는 새로운 기술이 그 출원 전에 공지되거나 공연한 상태에서 실시, 반포된 간행물에 게제 또는 일정 요건을 만족하는 전기통신회선(인터넷 등)에 공개되어 공중이 이용가능하게 되면 그 기술의 신규성은 상실된다. 이 중 논문발표는 반포된 간행물에 게재된 경우(인쇄물)와 전기통신회선 공개(인터넷 공개)에 해당하게 된다.

특허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신규성이므로, 위에서 언급한 신규성 상실은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은 물론 자신의 논문 발표 등도 해당된다. 비록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라 해도 논문으로 먼저 공개하고 나서 특허출원을 한다면, 특허출원으로 신규 기술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공개로 특허받지 못하는 것은 가혹하고, 연구결과를 신속히 공개하도록 하는 논문발표의 취지를 고려하여, 특허법에서는 출원전 공지된 발명이라도 일정 요건 하에 출원하면 그 공지된 발명으로 인해 신규성이 상실되지 않는 것으로 고려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를 공지예외 규정 또는 신규성상실예외 규정이라고 하는데 특허법 30조(미국 특허법 102조(b))에서 규정하고 있다. 종전 한국 특허법에서는 최초 공지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출원하였을 때만 인정하였으나,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 및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서한교환에 따라 2012년 3월 15일[2] 이후 출원된 특허부터는 미국특허법과 같이 그 유예기간이 1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논문을 먼저 발표한 후 특허출원할 수 있는 신규성 의제기간이 1년 이지만, 일본은 6개월이며 유럽이나 중국은 이러한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신규성 의제는 특허출원과 동시에 주장해야 하며, 신규성 의제가 인정된다고 해도 그 출원을 기초로 하여 파리조약에 근거한 해외 출원을 하거나 PCT 출원을 하는 경우에는 파리조약이 인정하는 1년의 우선권주장 기간이나, PCT 출원에서 인정하는 30개월의 국내단계 진입기간이 인정되지 않는다. 즉, 파리조약에 의한 우선권주장 출원이든 PCT 출원이든 최초 공지일부터 미국 출원은 1년 이내에, 일본 출원은 6개월 이내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였을 때는 특허출원을 먼저 하고 논문을 출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허문헌은 엄격한 법적 요건을 갖추어야 하므로 작성에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각국 특허법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통상 연구자가 논문을 먼저 작성하는 것을 고려하여 미국에서는 가출원제도를 인정한다. 즉, 청구범위를 적지 않고 발명의 내용만 특별한 형식에 제한 받지 않고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작성 언어도 영어로 제한하지 않으므로 한국어 출원도 가능하다.

한국도 특허법 42조에서 특허출원을 규정하면서 그 5항에서 특허청구범위 제출을 일정기간 유예[3]할 수 있도록 하여, 논문으로 작성된 기술을 간단히 발명의 상세한 설명으로 변환하여 출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비니히와 로러의 논문 발표와 특허 출원

비니히와 로러의 사례는 특허출원과 논문발표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연구소가 위치한 곳인 스위스에 최초로 출원하고, 파리조약에 따라 위 특허를 우선권으로 주장하면서 1년 이내에 미국에 출원하여 등록받았다. 또한 발명자 이름에 (1)발명의 완성에 참여하고, (2)일정한 기술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하고, (3)실질적인 상호협력을 한 두 사람의 이름만 기재하여 발명자 범위를 명확하게 하였다.

그림3. 스위스 특허출원(1979년)을 우선권주장하여 미국에 출원(1980년)한 특허 서지사항

또한, 특허출원 이후인 1982년에 논문이 게재되도록 투고하여, 자신이 발표한 논문으로 인해 특허의 신규성이 문제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덧붙여 일부 논문에는 자신들의 연구를 도와 준 사람들의 이름을 게재했지만, 특허와 동일한 내용의 기술이 소개된 논문[4]에는 그들이 단지 기술적 도움을 준 사람임을 감사문에만 밝힘으로써 특허권과 관련하여 뒷날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주사 터널링 현미경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할 두 사람을 선정하는데 다른 논란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1] Phys. Rev. Lett. vol. 49, 57~61 (1982)
[2]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서한교환(관보게재일: 2012년 3월 12일)
[3] 2007.1.3. 개정특허법 제8197호
[4] Surface Science 126, 236 ~ 244 (1983)